정부재정

전주성 교수 (이화여대 명예교수, 디피아이 대표)
이 글의 동영상은 유튜브 채널 ‘kcef2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NEgOrOMtCGY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금융투자소득세 (이하 금투세)의 2년 유예라는 정부 개편안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투자에서 발생한 소득에 매기는 세금입니다. 

쉽게 말해 주식 투자해서 번 돈에 대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과세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외국인투자자나 대주주들은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만, 대다수 투자자들은 증권거래세가 유일한 주식거래 관련 세금입니다. 

원래 시행하려던 원안을 보면 금투세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의 증권거래세는 인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자세한 제도는 부록 참고]

 

[여당, 야당 모두 애매한 논리]

정부는 가뜩이나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큰데, 금투세를 내년에 시행하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식양도세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유가 클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굳이 이번 개편안에서 종목당 10억원이던 과세기준을 100억원으로 엄청나게 높여 부자들을 우대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2년 전, 민주당 정권 때 이 법안을 입안한 배경을 보면, 증권거래세가 없고 자본이득세만 있는 선진국 사례를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소득인데 왜 증권 투자해서 나오는 소득은 과세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지요. 논리적으로 타당성은 있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번 금투세를 일종의 ‘세제 선진화’로 생각하는 견해도 있는데 이것은 세금의 기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순진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체계적인 개혁이 아닌 부분적 개편은 오히려 세제를 더 복잡하고 열등하게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 라는 말 같지 않은 논리를 조세원칙이라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요. [이 부분은 제 책 <재정전쟁>에서 상세히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소득은 여러 세원 중 하나일 뿐입니다.] 굳이 조세원칙이라 한다면, 정부 살림에 필요한 세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배분 왜곡효과, 즉 효율비용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주어진 조세부담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세부담의 공평성을 결정할 때 ‘능력원칙’과 ‘편익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정도까지가 굳이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재정전쟁 7장 ‘세금의 절반은 정치다’ 참조)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조세제도를 소득세 중심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한때 포괄적 소득과세가 유행했던 미국에서조차도 이미 한 물간 얘기입니다. (<재정전쟁> 6장 ‘저소득자도 세금 많이 낸다.’ 참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형태의 금투세는 득보다 실이 큰 제도이므로 일단 유예하고, 좀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세제도 중 가장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 바로 주식 같은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자본이득(시세차익,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입니다. 이론적 당위성과 정치적 현실 간의 간격이 가장 큰 영역이기도 하지요. 이런 저런 할말이 많지만, 여기에서는 기존 논쟁에서 잘 언급되지 않던 핵심 쟁점 몇 가지를 강조합니다

 

[금투세가 개미투자자와 무관할까? 천만에!]

우선, 이 세금이 금융시장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 그리고 정말 소수 자산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세금이 맞는 것인지부터 살펴봅시다. 금투세 강행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부유층 소수라 주장하는데 이는 세금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견해입니다. 

제 책 <재정전쟁> 8장 ‘세금을 피하는 세 가지 수단’에서 강조했듯이, 세원의 이동성이 있으면 세금은 전가되기 마련입니다. 생산자에게 맥주세를 매긴다 해도, 소비자가 더 올라간 가격의 형태로 실질적인 세금 부담을 할 수 있지요. 기업에 매기는 세금도 소비자나 노동자가 높아진 상품가격이나, 낮아진 임금의 형태로 그 일부를 부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누구의 “이동성” 즉 ‘탄력성”이 더 큰가가 관건이지요.

금투세가 부과되면 여기 해당되는 사람들은 금융시장에 밝은 자산가들이기 때문에 세금을 피하려는 노력을 하려 할텐데, 그 과정에서 주가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그 손실의 상당 부분은 대다수 개미투자자가 부담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금투세는 조세회피가 용이해 비효율이 클 수 있는 세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금으로 인한 비효율 혹은 사회적 비용은 낮아진 세수나 낮아진 주가의 형태로 나타난다 할 수 있다. 금투세가 맥주세 같은 당사자 간의 세금 전가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이동성 높은 자산가가 세금을 피하려 할 때 소액투자가자 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암묵적인 전가”가 이루어진다 볼 수있다.]


[부동산 vs. 금융자산]

일반적으로, 자산에 대한 세금은 자산스톡 자체에 매길 수도 있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매길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은 이동성이 작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주 매력적인 세원입니다. 그래서 재산세, 종부세 같은 보유세에다 취득세, 등록세 같은 거래세, 그리고 임대료나 양도차익 대한 소득세 등 부과되는 세금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다만, 부동산 보유세의 경우 현금 흐름이 없는 상태에서 내는 세금이라 조세저항이 클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경제적 효율성과 정치적 수용성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세금을 매기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런데 금융자산의 경우 부동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동성이 크기 때문에 조세를 회피하고 전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주식 자본이득의 경우 발생주의가 아니라 현금주의, 즉 실현된 소득에 대해서 과세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왜곡효과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처럼,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는 행동 왜곡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이 제도를 오래 시행해온 다른 나라들도 늘 골머리를 앓고 있지요. 유럽에서 한 때 유행했던 부유세(wealth tax)가 대부분 사라진 이유도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금융자산을 외국으로 옮기려 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워렌 버핏이 자기 비서가 자기보다 실효세율이 더 높다 얘기한 것도, 비서의 소득은 근로소득이지만 자신의 소득은 대부분 자본이득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장기투자이익 보호해야]

그래도 선진국 제도를 보면 자본이득 과세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주식투자를 왜 장려합니까? 투기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생산자금을 제공하라는 의도겠지요. 그래서 선진국 제도를 보면 대부분 장기 자본이득은 과감한 공제를 통해 실효세율을 낮추어 줍니다. 그 결과 투자가 늘고 생산자본이 축적되면 생산성이 높아져 노동자들도 혜택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금투세 원안을 보면 장기투자 대신 단기적 이익실현을 유도하는 듯한 애매한 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얼마간의 세수 효과는 누릴지 모르지만 (그것도 그 실질 부담은 상당부분 개미투자자에게 전가될 수 있지만),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별로 바람직 하지 않다 볼 수 있습니다.


[부분적 개편 보다 제대로 된 자산과세 고민해야]

따라서, 기왕에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 조세제도의 큰 틀에서 이론적 정합성과 정치적 수용성을 충분히 감안해 좋은 시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기존의 증권거래세에 대해 비판적 견해을 갖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증권거래세는 나름 안정적인 세수를 비교적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조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일종의 사용료(User fee)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장기투자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차피 거래세가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잃어도 수수료 낸다”는 말은 주로 단기 투기꾼들이 하는 불평입니다. [어차피 조세정책은 ‘차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 설계된 자본소득세가 아닌 바에, 거래세가 어느 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봅니다. 조세제도는 정치성, 역사성이 강하기 때문에 선진국 제도가 무조건 좋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제 책 13장 ‘부동산 세금의 여러 얼굴’에서 강조했듯 부동산 보유세가 거래세 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기존 관념도 편견에 불과합니다.]

저는 제 책에서 우리나라 조세제도를 ‘누더기 세제’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충분히 복잡해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정치적 비용이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체계적인 제도개혁은 하지 않고, 기존 제도에 이런저런 애매모호한 세금을 짜집기해서 덧붙이면 실질적인 세수효과는 크지 않으면서 효율과 형평 양 측면에서 비용만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제 책에서는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양극화 시대에서는 부자들의 실질적 세금 부담이 중요하다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조세회피, 조세저항 능력이 크기 때문에 실현가능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부자과세는 부동산뿐만이 아니라 금융자산도 함께 포함해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정부의 세제개편안에서 고소득자 기준을 대폭 완화한 부분을 취소하고, 증권거래세도 그냥 유지하면서 문자 그대로 지금 현행 제도를 2년 유예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제도는 일관성도 중요하니까요. 

기왕 바꾸려면 향후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조세제도의 큰 틀에서 이론적 타당성과 정치적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 한발 물러나 이번 게임은 ‘무승부’로 가고, 다시 정책 경쟁을 준비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부록] 금융투자소득세 제도

(현행)
2023년부터 주식,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을 포괄적으로 과세하고, 증권거래세율을 낮출 계획(보유세 강화 및 거래세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금융투자소득 내 손익 통산 및 손실이월 공제(5년)를 허용하고 2단계 누진세율로 분류과세: 1년간 순이익의 5000만원 초과분에 20%; 3억원 초과분은 25% 세율 적용

(증권거래세율) 코스피의 경우 0.08%에서 0%로, 코스닥의 경우 0.23%에서 0.15%로 인하할 예정(단, 코스피의 경우 0.15%의 농특세가 추가되기 때문에 코스닥과 거래세율이 사실상 동일함)


(2023년 개정안)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시기를 2년 늦추면서 증권거래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

(금융투자소득세) 2025년부터 시행

(증권거래세율) 코스피의 경우 현재 0.08%에서 2023-2024년 0.5%, 이후 0%로, 코스닥의 경우 각각 0.23%에서 0.20%, 0.15%로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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